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첨단 과학 기술을 인류 미래의 열쇠라 일컫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견은 분분할 수 있으나 결국 답은 하나일 것이다. 과학 기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곱 편의 단편을 엮은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도 그것을 증명한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 기술을 통해 우리는 신인류 사회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순례자를 만나고, 말도 통하지 않는 먼 우주의 생명체와 공생하기도 한다. 뇌의 생각을 읽어 동물의 울음을 해석하고 먼 우주의 행성으로 떠나기 위해 우주정거장에 티켓을 들고 앉아있기도 한다. 감정을 물질처럼 소유하기도하고 사람의 생애를 도서관의 책처럼 보관해두기도 하며, 인간다움을 거세하면서 우주의 저편으로 향한다. 작품 속에서 우리는 상상했던 일들을, 혹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이뤄낸다. 그리고 깨닫는다. 차갑고 논리적인 과학이 우리에게 우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낭만적인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만난 일곱 편의 이야기는 SF이면서 로맨스이고, 과학적이면서 감성적이다. 결국 우주의 이야기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견고하게 이어진 김초엽의 세계

 

 

 일곱 편의 이야기는 일종의 순환 고리 같다. 각각의 배경과 소재가 모두 다르지만, 책을 덮고 나면 꼭 하나의 이야기를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첫 번째 작품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성인식을 치른 뒤 시초지라 불리는 미지의 세계로 순례를 떠나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을에서 태어난 데이지는 시초지에서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 그러다가 아이들의 출입을 금하는 마을의 도서관에서 금서를 읽게 되고, 그를 통해 마을의 창시자인 릴리와 올리브와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된다. 정해진 성년식보다 조금 더 빠르게 시초지로 가기로 결정한 데이지는 소피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직접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어. 궁금해서 더 기다릴 수가 없었지.’ 그리고 단언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이렇게나 무모하고 과감한 데이지의 여정은 호기심으로 시작된다.

 

 촉망 받는 연구원이자 생물학자로 우주 탐사선에 몸을 실었던 희진의 이야기 역시 호기심과 긴밀하게 맞닿아있다. 항해 중에 우연히 발견한 매력적인 행성에 대한 호기심은 희진을 낯선 행성 지표면 위로 불시착시킨다.. 그리고 희진은 그곳에서 외계 생명체 루이를 만나고 루이가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게 되면서 외계 생명체와의 기묘한 공생이 시작된다. 듣는 것 조차 어려운 미지의 언어 탓에 간단한 의사소통도 불가능했던 막막한 현실 속에서 희진은 종종 그들의 말을 분석할 수 있는 소수언어 분석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하지만 희진에게 있는 것은 희진의 신체와 감각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이가 죽고 희진의 앞에 두 번째 루이가 나타난다. 다소 억지스럽기까지 한 몇 번의 환생 아닌 환생 과정을 거치며 희진은 그들이 색채 언어로 소통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로소 감각으로나마 루이의 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희진이 터득한 이해의 기반은 루이를 향한 애정이었을 것이다.

 

 애정의 근원은 위대한 화가 류드밀라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행성을 그려 대중과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던 류드밀라는 그 행성이 실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모두가 믿지 않았다. 그러나 류드밀라 사후 실제 행성이 발견되고 모두가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이 소식은 뇌 해석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 수빈에게도 전해진다. 그 때, 수빈은 2개월 된 아기들의 입속말을 분석한 데이터를 통해 아기들의 머릿속에 지성적 존재가 공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은 일곱 살 즈음을 기점으로 그간의 기억과 함께 떠난다는 가설까지 세운다. 류드밀라는 유일하게 그들과 공생을 이어갔고 그들의 기억을 토대로 행성을 그릴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그녀의 행성에 유독 강렬한 감각을 느낀 것이다. 아마도 그 감각은 지워진 기억에 대한, 혹은 공생했던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체 없는 그리움으로 맺어진 이야기는 구체화된 그리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냉동 수면 기술인 딥프리징을 연구한 과학자 안나는 우주 정거장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그녀는 남자에게 슬렌포니아로 떠난 남편과 아들을 보러 가기 위해 정거장에 왔다고 말한다. 오래 전 자신의 연구가 마무리되는 대로 떠날 생각이었지만 그 사이 우주 웜홀이 발견되었고, 웜홀 통로가 발견되지 않아 이동의 효율성이 사라진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하필이면 마지막 운항은 그녀의 연구 결과 발표날이었고 그녀는 우주선을 놓쳐버렸다. 그 뒤로 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수면 기술을 이용해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우주선의 재운항을 기다리게 된다. 백 년이 넘는 기다림을 반복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던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그래서일까. 그녀는 누군가에게 무의미하다고 손가락질 받을지언정 꿋꿋이 여정을 떠난다. 우주 공간에서 그리움과 외로움이라는 우울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통제할 틈 없이 생애 곳곳으로 스며드는 우울을,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감정들을 소유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물음으로 시작된 보현의 이야기는 그녀의 연인인 정하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한 문구 업체에서 출시한 감정의 물성은 작은 자갈 모양으로 향을 맡거나 직접 만질 수 있는 물건이다. 행복, 기쁨, 슬픔, 우울, 심지어는 증오의 이름이 붙은 이 물성은 출시 후 신드롬을 일으킨다. 정하는 그 물성이 일으키는 현상을 집단적 환각이나 플라세보 효과라고 생각하지만, 연인인 보현은 중독된 사람처럼 우울체를 사모은다. 정하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어 보현과 논쟁 아닌 논쟁을 하게 된다. 이 때, 보현은 덤덤히 말한다. ‘어떤 문제들은 피할 수가 없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짓눌려. 나는 감정에 통제받는 존재일까? 아니면 지배하는 존재일까? 나는 허공 중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해.’ 정하는 그제야 보현이 우울체를 소유하는 행위가 감정의 통제권을 분실당한 그녀의 극복 방법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야기는 또 다른 분실자 지민으로 이어진다. 책장 대신 마인드 접속기가 자리한 도서관은 더 이상 독서를 위한 공간이 아닌 추모의 공간이 되었다. 수십 년 전 보편화 된 사후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 생전의 망자를 그럴싸하게 재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을 기록하는 곳이 도서관이 된 것이다. 지민의 어머니도 3년 전 그 곳에 기록되었다. 우울증으로 인한 히스테리로 어머니와의 단절을 택했던 지민은 임신 후 엄마의 부재를 느낀다. 그렇게 도서관으로 향하지만 마인드를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인덱스가 제거되어 엄마의 존재가 분실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민은 분실된 엄마의 마인드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엄마가 되기 이전 김은하라는 여성으로서의 존재와 마주한다. 분실은 자아가 거세당한 생에서 해방되기를 원했던 은하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민은 자신의 탄생과 동시에 김은하로서의 존재를 억압당한 채 살아야만 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어떤 해방은 심해 한 곳에 묻혀있다. 그 심해에는 재경이 있다. 인류 최초의 터널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던 재경은 마흔여덟이라는 많은 나이와 만성 전정기관 이상이라는 부적격 사유를 갖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납득되지 않는 결과에 비난을 보내면서도 그녀가 겪은 기괴한 신체 개조 과정이나 고통스러운 훈련을 보며 올림픽 국가대표를 향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더 나은 몸을 가지게 될 자신의 모습이 기대된다는 재경의 말이 거시적인 관점이 아니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긴 시간 끝에 시작된 프로젝트는 캡슐의 추진체 불안정으로 실패하게 되고 비행사들의 시신은 터널 너머로 사라진다. 명예롭고 숭고한 죽음을 목격했던 가윤은 재경을 자신의 우주 영웅으로 생각해왔지만, 사실 재경은 캡슐에 타지 않고 도망치던 중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황스러웠던 것도 잠시 가윤은 재경이 겪었을 과정을 체험하면서 비로소 그녀의 선택이 해방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를 향한 차별적 시선과 비판적 우려, 소수자의 기대감과 실패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재경에게 그 해방의 목적지는 수도 없이 보았던 우주의 풍경이 아닌 아득하고 캄캄한 심해 한 곳이었을 뿐이다.

 

 


 

 

우주는 놀랍고 아름답다

 

 

 사람은 물질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감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제법 낭만적인 존재이다. 인간이 가진 감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과학이란 꽤 딱딱한 학문이다. 위대한 발전을 이끄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래에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비판받기 십상이다. 실제로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여지가 있다. 정상과 비정상, 부유와 빈곤 같은 분리주의를 만들어낸 유전자 개조와 자아와 의식 없는 망자의 허상을 보관하는 도서관, 인간 고유의 정체성을 개조하면서 이루어낸 우주 탐험들은 모두 비윤리의 경계 너머에 있다.

 

 독특한 것은 이 작품에서 비윤리적인 소재들이 인간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도 차별 당하지 않는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지구는 유전자 개조로 인해 끔찍한 곳으로 묘사되지만, 그토록 완벽한 공간에서도 갖지 못한 사랑이 있다. 순례자는 그 곳에서 무수히 많은 절망과 차별을 발견하지만, 기어이 머무른다. 약속이라도 된 양 찾아올 괴로움 너머에 더 큰 행복이 있기 때문을 알기 때문이다.

 

 아득한 우주의 세계에는 수많은 감정이 녹아있다. 그리고 김초엽은 개인, 단체, 사회, 인류 그리고 우주가 가진 독특한 이야기들과 야무지게 엮어 우리에게 선물했다. 강렬한 호기심과 색채화 된 애정, 필연적인 그리움, 족쇄처럼 따라붙는 우울, 감정 통제권의 분실, 잃어버려야만 벗어날 수 있는 억압, 억압에서의 완전한 해방. 이 견고한 순환은 아름답고 놀라울 뿐이다.

 

 빛의 속도, 즉 광속은 1초에 약 30만 킬로미터로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아마도 우리는 영원히 그 속도로는 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의 속도대로 무던히 걸어가면 된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슬렌포니아에 다다를 안나의 낡은 우주선처럼 우리의 걸음도 언젠간 우주 저편의 공간에 닿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때때로 우주 공간 속에서 외로운 존재를 만나고, 이해하고 끝내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 긴 순례길의 시초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초엽은 인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순례를 시작했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