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꿈과 낭만으로 가득한 뉴서울파크는 경기도 평인시 신곡구 구촌읍 새길로 166번지에 문을 열었다. 바다 건너 타국의 마스코트로부터 특징을 조금씩 떼어 만든 꿈곰이로 대표되는 이 곳은 꽤 알아주는 놀이공원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와 놀이공원에 온 여자 아이, 유지는 기대하던 놀이기구를 신장 1센티미터가 부족해 타지 못하게 되고 꿈곰이가 나눠주는 풍선은 순서가 밀려 받지 못한다. 텔레비전 속 광고를 볼 때는 추억에 젖어 놀이공원에 가고 싶은 양 말을 했던 부모는 기회만 되면 서로의 탓을 하고 싸우기 바쁘다. 잔뜩 성이 난 부모의 등을 응시하던 유지는 돌연 걸음을 옮긴다. 유일하게 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다람쥐통 기구조차 운행을 하지 않아 타지 못하지만, 연두색 옷을 입은 수상쩍은 젤리 판매상을 만나 젤리를 받는다. 그 날의 이야기는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된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은 유지라는 한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시작해 각기 다른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제목만 보면 수수께끼 같은 젤리장수의 정체를 밝혀내는 작품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고 범인을 잡는 단순한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색다른 스릴러 장르이지만 그렇다고 추리 소설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유지의 시선으로 시작한 이 작품이 결국 유지의 선택을 끝으로 마무리되는 동안 젤리처럼 끈끈하게 맞물리는 여러 인물의 개별적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맞닿을 리 없을 것 같던 이야기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완성되는 순간의 희열을 그리고 있다.

 



P.99 “지나간 시간에 붙잡혀 사는 것은 무척이나 외로운 일이다. 나는 그 애가 외롭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희망적인 놀이공원이라는 배경과 달리 작품 속 인물들은 제 나름의 심연을 안고 살고 있다. 관계가 파괴된 부부, 아이다움을 소거 당한 아이, 광적인 사랑에 매몰된 여자, 믿음과 사랑을 저버린 남자, 그릇된 믿음으로 삶을 빼앗긴 남자, 구원과 선택에 자신을 팔아버린 여자, 자아와 돈을 거래한 남자.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속으로는 고뇌에 사로잡힌 이들은 ‘젤리’라는 하나의 공통점을 통해 점점 무너져 내린다.


 정체불명의 젤리장수는 손에 쥔 젤리를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그 젤리를 나눠먹으면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야.’ 라고. 그는 젤리를 받아간 이들이 그들과 가까운 이와 영원히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받아 드는 이들은 낯선 이의 말을 마뜩찮아 하면서도 젤리를 우겨 넣는다. 그리고 종래에는 신뢰 가지 않던 그의 말을 떠올린다.

 



P.126 “꿈과 희망의 뉴서울파크, 그곳에는 즐거움만 가득할 것 같았다. 세상의 어떤 불행도 침입하지 못하는 곳, 설탕으로 지어진 이글루와 같은 곳.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안다. 놀이공원의 반짝반짝한 모든 것은 단지 섬세하게 꾸며졌을 뿐이다. 하지만… 믿는 게 죄는 아니잖아?


 헤어짐을 선택하는 것에는 여러 감정이 따른다. 누군가는 통쾌하고 기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회한을 느낄 것이다. 조립할 수 없이 망가진 관계일지라도 처음은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즐거움만 가득한, 세상의 어떤 불행도 침입하지 못하는, 낮이면 웃음 소리로 가득하고 밤이면 축제의 불꽃 소리로 차오르는 뉴서울파크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섬세하게 꾸며진 것에 불과하다. 모든 관계에는 대게 끝이 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헤어짐을 선택하며 산다. 헤어짐을 선택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어디에나 독처럼 서로를 죽이는 관계가 있기 때문에, 차라리 헤어짐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지 않나. 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함을 택하는 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하나가 된다는 게 죄는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