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3



 고백하자면, 나는 기계를 다루는 일에 매우 미흡한 사람이다. 사실 기계라기보다는 움직이는 것들. 예를 들자면, 자전거나 자동차 그런 것들 말이다. 따지고보면 원인은 모두 내재되어있는 것들이다. 가장 큰 원인을 찾으라면, 아마도 그건 내가 겁이 많아서 일 것이다. 나는 두려움도, 겁도 많은 사람이다. 다칠까봐 두렵고, 잘 해내지 못할까봐 무섭고, 그 뒤의 후폭풍과 수없는 비난의 물결이 겁이 나는거다. 자전거는 넘어지는 순간이 아파서, 차는, 기억이 두려워서다.


 오늘은 그 기억에대해 이야기 할 생각이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그 때를 기억하면 생생하다. 날은 더웠고, 차는 컸다. 나는 무모하게 1종 보통을 지원했었기 때문에 작은 소형차대신 크고 낡은 흰색 트럭을 운전했다. 필기 시험과 간단한 기능 시험정도는 문제가 없었다. 도덕책을 긁어온 듯한 판에 박힌 문항들은 정답이 아닌 것을 고르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쉬웠다. 직진과 급 정지, 비상등 누르기 같은 간단한 조작 정도는 더 쉬웠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도로주행은 학원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었기때문에 일종의 기출 문제와 가이드라인이 존재했다. A코스는 시골 길과 이어지는 길목까지 시원하게 달리다가 돌아오면 그만이었고, B코스는 6차선 도로까지 나가 유턴을 하고, 4차선 골목에서 차를 꺾기도 해야했다. 어떤게 시험의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그리고 내가 간과한 것은 세상에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나의 도로 주행을 도와준 사람은 시내 버스 운전 기사였다. 비번인 날에는 학원에서 주행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는 20년 넘은 운전 경력이 있었고, 그래서 내가 퍽, 아니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는 수동 기어 조작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시동을 끄고 말았을 때 처음 화를 냈다. 이렇게 하면 면허 못 따요. 그렇게 말하기에 뻘쭘하게 고개만 끄덕였던 것 같다.


 그가 '제대로' 화를 낸 건 그 다음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6차선 도로 위에서 시동을 꺼먹었을 때다. 연이은 지적으로 의기소침했던 나는 결국에 그 넓고 황망한 도로에서 멈춰버리고 말았다. 내 뒤에 줄지어 오던 차들은 모두 빵빵거렸고, 특히 바로 뒤에 있던 택시는 창문을 내리고 손가락질을 하며 옆 차선으로 옮겨 갔다. 나는 그 비난이 너무 창피했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도로 주행이라는 팻말이 달린 트럭은 도로 한가운데에서 아주 짧은 시간을 웅크린 채 있었다. 꺼지자마자 화들짝 놀라 다시 시동을 걸고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멈춰있던 시간은 10초 남짓이었는데, 나는 그 시간이 꼭 10시간 같았다고 기억한다. 최악이었다.



 두번째 도로 주행은 전 코스, 후 코스로 나뉘어진 B코스에서 '후 코스'라고 불리던 부분이었다. 4차선의 (비교적) 좁은 골목에서 우회전과 좌회전을 번갈아해야 하는 코스였기 때문에, 유턴과 기어 변경 외에는 크게 어려운 것이 없었던 전 코스에비해 까다로웠다. 나는 그 코스에서 첫 우회전을 시도했을 때, 작은 둔덕처럼 솟아있는 모서리를 밟았다. 차는 덜컹했고, 나의 옆에서 주행을 감독하던 그는 빈정거렸다. '저기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 네가 사람을 죽인 건데.' 그는 그렇게 말했다. '살인자가 된거지, 뭐.' 그리고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그 다음, 다음 번 우회전을 하면서 시동을 꺼트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다소 많이 화가 나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모서리에 멈춰선 나를 비난하며 차에서 당장 내리라고 소리쳤다. 나는 입술을 물고 차에서 내렸고, 그는 운전석에 앉아 차를 끌었다. 학원까지 가는 3분 남짓한 짧은 시간동안 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사람이 있었다면, 내가 아까 사람을 죽였겠구나. 그럼 나는 살인자가 되었겠구나. 나는 운전을 하면 안되는 사람이구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비참함에 잠겨있었던 것 같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다. 늦둥이 막내 딸이 운전 연수를 받는다는 것이 신기하고 어색했다던 부모님은 연수가 끝날 시간에 맞춰 학원 앞에 마중나와있었고, 내가 아닌 그가 운전대를 잡고 오는 것에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조수석에서 내리면서 그에게 꾸지람 비슷한 충고를 들었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에서 가방을 찾고, 시험 일정을 잡은 뒤 부모님의 차에 타기까지 끊임없이 이를 악물었다. 울고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나 면허 안 딸래.' 아빠가 끄는 차에 앉자마자 선언하니 엄마는 무슨 일이냐며 부리나케 뒤를 돌았다. 엄마의 눈이 내게 닿는 순간을 기다리던 사람마냥, 나는 엉엉 울었다. 그 날의 기억은, 그렇게 나에게 악몽이고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면허를 딴지 이제 얼추 10년이 다되어간다. 나의 새로운 운전 선생님은 아빠였고, 엄마였다. 그래서 나는 첫 도로주행에서 여유롭게 합격을 따냈다. 하지만 나는 운전을 거의 하지않는다. 그 날의 기억은 나에게 꼭 족쇄같이 느껴진다. 나는 핸들을 움켜쥐면 도로에서 멈춰선 트럭의 운전대를 생명줄 잡듯 잡았던 내 모습이 떠오르고, 기어를 바라보면 넌 지금 사람을 죽였다고 빈정대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는 내게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고 사과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나에게 기억이자 족쇄로 남아있다. 나는 앞으로도 꽤 긴 시간 운전대를 잡지 않을 생각이다. 그 날이 잊혀지지 않아서라는 이유는 대지않기로 마음 먹어 볼 생각이다. 나는 이겨낼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이겨내야 할 상대는 잊혀지지 않는 그의 빈정거림이 아니라 내게 내재된 두려움일 뿐이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된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